조선시대 그림
조선시대 숭유억불로 차문화는 쇠퇴하여 궁중의 의식에서는 사라졌지만 중국사신등에 다례가 있었다.(세종실록)
궁중 및 사대부 중심으로 차가 성했지만 차가 일반화 되지는 못했다.

다시(茶時)

  • 고려때부터 조선말까지 행한 유습으로 사헌부의 관헌들이 매일 한번씩 등청해서 한자리에 앉아 토의하는 모임을 일컫는데, 현대의 Tea time으로 추정된다.

봉차(封茶)

  • 혼인이 결정되면 봉차라하여 차를 봉하여 보냄으로 결혼의 신표로 삼았다.
    결혼후는 신부는 찬가에서 준비해온 다과(茶菓), 다식(茶食)등의 음식을 차려 놓고 차를 달려 차례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궁중의식에서 차의식은 없지만 가례의식에서 차를 이용하였다.

점 필재, 김 종직 선생의 자재배 : 1471(성종2년)

  • 함양군수인 점 필재선생이 군수로 부임하여 보니 차의 생산이 없는 함양에서 차를 세금으로 바치기 위해서 전라도까지 가서 쌀 한말과 차 한홉을 교환하여 세금을 내는 민폐를 덜기위해 관내차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엄천사 북쪽의 대나무밭 주변에 자생차가 있는데 착안하여 그 주변에 차밭을 조성하였다. 이는 우리나라의 인위적인 차재배의 효시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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